4ddyz사람에 따라 ‘눈물’을 슬픔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눈물의 의미를
77irdp그것 하나만으로 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슬픔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bu1z3못하는 사람에겐 눈물을 흘릴 여유조차 없다.
cux468옛날, 한 망국(亡國)의 임금은 자신의 신하들이 적국의 노예가 되어
dmemrb눈물을 슬픔의 표상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눈물을 기쁨이나 감격의
oube5j나의 눈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6eb4l9나는 스스로 나의 눈물이 나를 지탱케 하는 생명의 원천이라고 생각한
nd2jvp다. 내 뿌리를, 내 온몸을 적시는 버팀목으로서의 생명수 - 나는 눈물
edch8을 통해서 가을의 의미를 다시 만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로 다
i803wb시 태어나고 싶다.
0qlqlq가을은 아름다운 열매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값진 시간이다. 나는 이 비
5y4k옥한 땅 위를 조금도 흔들림 없이 눈물을 흘리며 걷고 싶다.
mmft그것은 진실한 나로, 나의 온전함을 지키며 사는 길이다.
gujxc이 가을은 어느 계절보다 아름다운 시간이다.
08h849수위()와 수목의 변화와, 시절에 맞춰 파는 꽃까지, 눈에 띄는 차
df3w이는 아니어도 마음으로 느끼는 변화는 조금씩 달라서, 천변을 걷는
td5r리듬을 타는 것인가. 노인들의 ‘아다지오’와 아이들의 ‘알레그로’
4j8ez, 수시로 발을 멈춰 호기심을 담아내는 스마트폰의 ‘가르고’까지,
5z13d벽 같은 인공물에 철마다 변화를 주는 자연물이 공존하는 것은 얼마나
v68m탄천 길을 좋아하는 것은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아서다. 굽어지지 않
bl4t은 길이 없듯, 곧게 흐르는 강은 없어 용인 범화산에서 발원한 탄천은
rikzns분당 구미동에서 큰 물굽이을 만나 유속을 늦추고, 정자동 쪽에서 다
gjeo시 휘감아 돌며 한강에 합류한다. 성미 급한 남자를 닮은 곧게 뻗은
bps8운 채 출렁인다. 일필휘지, 자유로운 필법 같다. 주변으로 잉어들이
pl9h7x곡선은 원만함과 여유와 아름다움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치열한
5c1bz몸부림이 있다. 산란기의 열목어가 제 몸길이의 열 배나 되는 폭포를
mkhew거슬러 오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홍천군 내면의 취소폭포. 거대한
m0mnum넘을 수 없음을 본능으로 알아챘다. 꼬리와 몸통을 힘차게 구부리는
p4top혼신의 반동으로 폭포를 차고 오르는 것이었다. 산란에 적합한 얕고
qyi8w미 열목어는 굳은 시체로 떠올랐다.
hihm낚시 광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저수지에서 잉어낚시를 했다. 수면에 솟
q0yp아있는 찌에 잠자리만 쉬었다 갈 뿐,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하품을
mq6c량으로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순간, 무겁고 팽팽하게 당겨진 낚싯줄에
o55x0흥분과 긴장이 휘청거렸다. 낚싯대가 피라미나 잡아 올리던 곧은 막
tfk있었다. 팔뚝보다 큰 잉어를 난생처음 잡아본 중학시절의 짜릿함은
476wz굽은 골목은 은밀하여 정겹다. 오래된 골목엔 저마다 이야기가 숨어있
osy3xc다. 계단을 통해 끝인가 싶다가도 새로운 길이 열리고, 동심의 깨금발
5927e이 가위 바위 보로 오르내린다. 그것을 따라 걷다 보면 가슴이 싸한
x5l1널린 빨래와 소박한 화분과 나무들까지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lwoc통신사들은 왜 휘어진 스마트폰을 만드는데 경쟁할까? 평평한 기기보
2sewb6성가신 빛의 반사를 줄여 눈의 피로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
fd8w건물의 주체를 철근과 시멘트 벽이라 한다면, 몸은 뼈와 근육이 그 주
fsuq8체다. 딱딱하게 굳은 직선을 떠올리는 뼈, 하지만 경직된 뼈는 몸의
o6y7ds완을 반복하는 것은 두 뼈를 잇는 관절과 인대가 있기 때문이다. 바깥
fno보다 안쪽으로 휘도록 설계된 몸의 굴절이 없다면 어떻게 걸으며, 어
sdldx1기관을 통해 보이지 않는 관념에 이르듯, 하나의 구부림에도 의도와
kt9l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 문틀에 부딪치지 않고, 허리를 구부림에
x3n075따라 정중함이 드러나고, 기쁨과 슬픔에 경배하는 무릎에서 자신을 낮
g5iep추는 지혜를 본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의사에 한인교포가 선정되
1xd3c었다고 한다. 그는 진료 때마다 환자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두 무릎
3zzcck을 꿇고 대화를 했다.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동참한다는 마음이 앞
c3gphs기에 가능하다.
qmgx0두 팔 없이 어떻게 포옹할 수 있을까. 위로와 안식을 주는 포옹은 팔
i8prx6요리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칼의 손목이라 할 칼자루를 잡고 만들
x6wv어내는 많은 요리들, 그것은 손목과 팔목의 운동이 서로 협력한 결과
9y8p경의 말씀이다. 휘어지지 않는 강은 얼마나 불안할까. 굽어지지 않는
hyh8열목어가 어떻게 폭포를 차고 오를까. 휘어지지 않는 낚싯대로 어떻게
p6kppm고기를 낚아 올릴까. 구부릴 수 없는 뼈마디로 어떻게 사람의 구실을
3p4q할 수 있을까.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이치에 맞게 행동
wk0y함으로써 제 구실을 한다는 말, 굽어진다는 것은 굴곡이 많아서 스스
v394b없어 보인다.
efsr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맑디맑은 도랑물이 제일 먼저 달려 나와 에스코
09zk트하듯 나를 맞이한다. 나의 태자리가 있는 마을 논산 양촌의 임화리(
62kzjn한적한 마을, 저 혼자 흐르며 심심했던 도랑은 굽이굽이 집까지 가는
jt y내내 그간의 마을 내력을 전하느라 종알종알 수다를 멈추지 않는다.
b1gnk6서 수령 사백 오십여 해를 헤아리고 서 있는 마을 앞 느티나무와 도랑
1eite2물뿐이다. 어릴 적 고향을 떠나서 오랜만에 찾아오면 보고 싶었던 친
5op개조되고, 새로 지어져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9pfkq사람도마찬가지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낯설다. 그들도
smwd또한 인적 뜸한 마을에 웬 낯선 사람인가 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
lh6wk사람도 늙지만 집들도 늙는다. 도랑물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의 허리쯤
l25z다다르면 온몸에 구멍 숭숭 떨리고 매미 허물처럼 껍질만남은 집 한
fg6xz채가 낡은 삭신 간신히 버티고 섰다가 나를 마중한다. 반갑다고 달려
i2xvt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무너질 듯 위태로운 집은 어린 시절 나
u2hnup와글와글 6남매 살지게 키우던 집은 주변 풍광이 그를 돋보이게 했다.
ihjo안채의 용마루 양측 어깨는 우람한 감나무가 듬직하게 받쳐주었고,
vqeqn2여름날 햇살이 집 정면으로 들면 대청마루를 비워두고 뒷마루로 옮겨
juptk은 이야기를 소곤대는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그만 엎드린 채
dpcfcb숲이 들려주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은연 중 나를 작가로 키웠는지 모른
i90df다, 집 앞뜰엔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여름에 개울에서 물놀이를
n3qg고 집어넣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며칠 못가서 그들은 단 한 마리도 남
eknk아 있지 않고 늘 그곳에 살던 몇 머리의 금중들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hp26lt. 개울로 이러진 좁은 수로를 용케도 빠져나가 모두 저 놀던 곳을 찾
3iq9g이렇듯 활기차고 건강했던 집이었지만 거기 살던 알맹이들이 하나 둘
o69kcx다. 그리고 무심한시간의궤적이 집을 매미허물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
eydkd9금세 풀이 무성해졌다. 어머니는 때마침 도회지에서 온 어느 젊은 부
hmf4p부에게 사랑채를 무상으로 빌려주었다. 그 집엔 아이가 셋 있었다. 그
7nqrt런데 어느 날 부모가 모두 집을 비운사이 제들끼리 불장난을 하다 그
hcz7hj않고 다시 도회지로 이사를 나갔다.
fmz7그 후로는 1년에 두서너 번 가족들끼리 선산에 성묘 겸 휴가를 갔다
qefw여 년 전부터는 집이 너무 낡아서 아예 발을 들어놓는 것조차 불가능
xff2한때는 육 남매를 살지게 키워내며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던 집이었지
10blm5내 껍질과도 같은 고향집.
p0rj3i지금은 6월, 저 위태로운 노구는 곧 다가올 장마의 습한 바람의 무게
5z1v문희와 병택이는 어릴 때 소꿉동무였다.
4vsfp문희는 나보다 한 살 위의 계집애로 부모님을 일찍 여의어 오빠 밑에
3rgf8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던가, 저 아래 기자 언니가 내 건너 이사 온 집
mc7bv총각과 솔밭 묘지 앞에서 뽀뽀를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는 문희를
f6g5w3통해서 들었다.
745y0z문희는 산나물도 잘 알고 꽃 이름 나무 이름도 잘 알았다. 보자기로
tw1jw들에겐 무섭게 대했지만 내게는 참 친절하고 다정했다. 이웃 마을에서
6jwtx놀러 온 낯선 얘들에게 나를“내 동무여.”라고 소개 할 때는 어깨가
019n0o으쓱해지고 신바람이 났다.
g2nx내 동갑인 병택이는 딸이 많은 집의 막내아들이었다. 시집갈 때가 된
x9qjsd누나가 둘이나 있어서 예쁜 옷도 지어줬고 늘 깔끔하고 단정했다. 입
heb4zy문희가 사내대장부 같이 씩씩한 반면에 병택이는 말이 없고 놀이를 그
5o6ki다지 즐기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다. 나도 수줍은데다가 놀이라고는 아
26e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였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을 때, 병택
sm4kku그런 내게도 지금 돌이켜보면 입안 가득 단침이 고이는 즐거운 놀이가
np89하나 있었다. 문희가 어쩌다 병택이와 나를 데리고 소꿉놀이를 하며
4ueu놀아주었을 때다. 마당가에 흙을 파서 2단으로 살강을 만들고 조가비
3uwiz6파서 아궁이를 만들고 화장품 통으로 솥을 걸었다. 떨어진 가마니를
pyjg문희는 언제나 엄마였으며 병택이가 아빠였다. 나는 대개 아기였고 때
zhw9론 강아지가 되기도 했다. 그런 역할은 문희가 정해주는 대로 따라야
5xtl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나를 가마니에 눕히고 착한 아기
9jme38뒷산 참나무 숲이 장터였다. 엄마는 풋 개암이나 아그배 등을 따서 치
o69y마폭에 잔뜩 담아오고 아빠는 가랑잎을 차곡차곡 포개어 주머니에 넣
php2e7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세었다. 가끔 아빠는 사마귀나 여치, 조그만
uhnzo청개구리 등을 잡아 오기도 했다. 흙을 조그만 우물처럼 파서 우리를
cj6g95만든 다음, 그것들을 그곳에 가두려 했으나 그것들은 손에서 내려놓
qvwkp우리가 소꿉놀이를 하는 곳은 대개 문희네 마당가였다. 문희네는 동네
cdsome아래쪽 양지 바른 곳에 있었다. 마당에서 우리 집 쪽으로 조그만 언
bb3g감잎이 다지고 까치밥으로 서너 알 홍시만 남을 때까지 그 감나무는
eh7t우리의 가장 훌륭한 재원이었다.
bzbb감꽃을 주워 먹고 풀 이삭을 뽑아서 거기다 감꽃을 꿰어 목걸이를 만
rl4느덧 감이 주먹만 해지면 떨어진 땡감을 주워 샘가 물 항아리에 우려
rxkpeg머니가 손수 지어 주신 포플린 원피스에 온통 시커먼 감물이 들었다.
lyiq일곱 살 때였다. 눈을 부비고 일어나 보니 잠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4cjl6무를 향해 갔다. 감꽃이 만개한 초여름이었다. 노랗게 쏟아졌을 감꽃
n2txjh나는 엉겁결에 그걸 받아들고 이슬 젖은 풀섶을 헤치며 달려가는 그
v6fc감꽃 목걸이를 나에게 주었다. 고물고물 입술을 벌린 감꽃이 떠오르
004t2t때 그 애는 집으로 들어가고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거
zrxe렸다. 나는 감꽃 줍기를 그만두고 목걸이를 쓰다듬었다. 문희에게 들
2zsy을 뛰기 시작했다.
0tyy정신없이 뛰다가 땅위로 솟아오른 참나무 뿌리에 걸려 엎어지고 말았
7wyz6었다. 나도 모르게 그걸 발로 밟았다. 감꽃의 여린 입술이 터져서 뭉
gmgjw그리고 어느새 우리도 부서진 감꽃 목걸이처럼 흩어진지 오래 되었다.
8fbl문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갔다. 병택이는 중학교에 입학한
n3np1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으로 전학을 갔다. 방학이 되면 고향집으로
cyt왔다. 나는 병택이가 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공연히 들떴다. 어머니가
94nh이미 빨아서 꼭 짜놓은 걸레를 들고 나가 바깥 마당가에 있는 샘에
8wxsl7그 애는 어머니가 장에 가실 때 함께 뒷동산까지 따라 나섰다가 집으
8nm7후 다시 뒷동산으로 오르곤 했다.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여러 번
frxo반복해서 뒷동산에 올랐고 나는 종일토록 샘가를 서성거렸다. 그럴
qwvd리고 무심한 척 걸레만 열심히 빨았다. 그러다가 나도 고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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